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사해 운동 (문단 편집) == 사해에 참새를 넣은 게 맹목적이었는가? == 당시 상황을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http://www.youtube.com/embed/ehqmmIef6_w|#]] 먼저 말하자면 참새를 제거 대상에 올린 건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터무니 없는 수준은 아니다. 참새가 추수기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은 사실이며, 무엇보다 마오쩌둥 본인부터가 농가에서 자라며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인물이었다. 즉 개인의 경험으로나, 당시 물려내려온 지식으로서나 참새는 해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농민들이 미친듯이 참새를 잡고 다녔던건 사해 중 비교적 잡기 쉬운 것도 있지만 '''실제로 참새를 해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전까진 '''참새가 없는 데서 농사하면 벌어지는 일''' 같은 일이 생긴 적이 없으니 참새가 해충들을 먹고 다녀 '''최악을 막는 차악'''이라는 것까진 당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예 문외한인 분야를 건드렸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토법고로]]와 달리 제사해 운동은 당위성도, 경험도, 지식도 있었으나 '''그 지식에 제발 걸린 격'''으로 실패한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대사해 운동 이후 참새의 이점이 밝혀져서 오히려 그 관점에만 얽메이는 경우가 많은데, 상술했듯 참새를 냅뒀을 때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제사해 운동의 본질이 변질된 것'''이었다. 비교적 잡기 쉬운 참새만 잡아대느라 [[모기]], [[파리(곤충)|파리]], 그리고 [[쥐]]의 퇴치를 거의 등한시하여 이름만 제사해(除四害) 운동이었지 사실상 제일해(除一害) 운동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모기와 파리, 메뚜기를 먹는 포식자인 참새가 대규모로 비어버리면서[* 해충들을 주로 먹는 포식자는 참새, 잠자리, 사마귀, 파리매, [[여치#s-4.1.1|중베짱이]] 등의 육식 곤충들이었는데, 이들의 수와 포식력에 비해 해충들의 번식력이 훨씬 높았다. 애초에 참새가 다량 있던 시절에도 명맥을 유지하던 수준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 제사해 대상중 삼해가 활개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제사해 운동은 명분은 둘째치고 당시 중국 상황만 따지면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위에서 언급된 대로 쥐는 하수도, 파리와 모기는 늪이나 폐수 등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번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중국은 기술이나 장비가 미흡해 이를 '''넘치는 인력''' 하나만으로 때워야 했다. 당장 더러운 물과 음식물만 있으면 대량 번식이 가능한 파리와 모기는 물론, 나름 덩치는 크더라도 하수도만 있으면 얼마든 숨어서 번식하는 데다가 참새처럼 수확기만 노리고 오는 게 아니라 불시에 '''곡식창고'''를 털어버리는 경우도 예사였다. 한마디로 본질적인 문제부터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잡는다 해봤자 본말전도였고, '''심지어 들어간 노동력에 비해 얼마 잡지도 못했다.''' 인력 문제 이외에도 참새 퇴치가 우선시된 건 낯선 위생 문제보다도 훨씬 친숙했던 농업 생산을 우선시하는 당시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단 파리나 모기는 곡식을 먹지 않고, 쥐 역시 곡식을 먹기야 하지만 주로 창고에 있는 곡식 조금씩이나 간간이 훔쳐먹는 동물로 인식되다보니 다른 부분에서 해를 끼치는 점이 더 부각되었다. 게다가 '위생 문제'라는 것은 해결해봤자 당장의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유병률이나 평균 수명, 평균 의료비용 같이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해야만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다. 정책을 집행할 당원 및 관료들 입장에서는 본인들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농업 생산량을 올리는 게 급선무이므로 당장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참새를 족치는 게 가장 그럴싸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참새는 추수기에는 곡식을 훔쳐 먹는 해로운 새임은 맞는 말이지만, 추수기가 아닌 평소에는 농작물과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각종 [[곤충]]과 [[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고 사는 이로운 새라는 점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참새의 감소로 늘어난 곤충과 벌레를 인간이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였다. 즉, 참새가 곡식만 훔쳐 먹고 사는 새가 아니며 참새가 잡아먹는 [[해충]]의 양 또한 엄청난 걸 생각하면, 농경지 부근의 [[생태계]]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주먹구구로 실시한 초대형 오판이자 국가급 소탐대실을 저지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러한 국가 정책이 일반 대중들의 요구와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검토에 의해서 실행된 것이 아닌[* 심지어 당시 공산권에서는 과학 개념조차도 사상에 따라 받아들일지 여부가 결정되던 시기였다. [[트로핌 리센코]]가 소련 농업계에서 득세하여 농업을 말아먹은 사례를 볼 때, 아직 초보적인 단계였던 생태학 연구는 설사 실무진 수준에서 제안되었다 하더라도 영미권에서 실시되는 부르주아적 학문을 기반으로 한다는 명목으로 배척될 가능성이 높았다.], 독재자의 즉흥적인 말 몇 마디와 인사고과에만 혈안이 된 공무원들에 의해 실행되고 철회됐다는 점에 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전반에 만연해 있던 '실적주의'와 '서류상 데이터'에 치중된 정책 입각은 하위 간부들을 보여주기식 정책과 서류 숫자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결국 무분별한 참새 학살과 병충해 창궐이라는 최악의 결과만을 낳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